순종의 힘

"새신자"(이재철) 중에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다. 자신의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한다는 유언이었다.
그때부터 요한은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마리아를 자기 집에서 모셨다. ...

이스라엘 여자들은 15세에서 18세 사이에 결혼하여 첫 아이를 낳았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을 때에도 이 나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마리아의 나이 차이는 많아야 18세밖에 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30대에 돌아가셨으니, 그때 마리아의 나이는 50세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마리아는 90세가 되기까지 장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테면 예수님의 승천 이후 마리아는 40년이나 더 산 셈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요한이 20대 중반이나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면,
요한은 60대 중반 혹은 70세 가까운 노인이 될 때까지 마리아를 모셨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요한과 동창생인 다른 제자들은 세계 도처에서 초대교회의 영웅이
되어 가고 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동안 제자의 족보에 오르지도 못했던
바울이란 사람이, 자신도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라며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그런데도 요한이 하는 일이란 칠십 노인이 되기까지 고작 늙은 노파의 뒷바라지나 하는 것이다.
평소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 부를 정도로
자신에 대해 긍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주님을 위해 누구보다도 큰 꿈과
야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늙은 마리아 앞에서 젊은 시절의 자기 꿈이
산산조각 나 버렸을 때 그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겠는가?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교인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어 가는 동창생들의 소문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처량하게 느껴졌겠는가? 그러나 요한은 노인이 되기까지
마리아 봉양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주인으로 모시는 주님의 명령이었고,
자신은 주님의 도구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요한의 인생이 끝나 버렸던가? 아니다. 요한은 힘없고 연약한 마리아를
40년 가까이 봉양하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으로 터득했을 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주님과 남모르는 은밀한 교제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마침내 마리아에 대한 요한의 봉양이 끝났을 때
주님께서는 이미 노인이 된 요한으로 하여금 요한복음을 쓰게 하셨고,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까지 쓰게 하셨다. 
그것은 끝까지 주님의 도구 되기를 거부하지 않은 요한에 대한 주님의 상급이었다. 
그것은 40년 동안 마리아를 모시면서 자신도 모르게 인생에 대한 통찰력, 사랑에 대한 이해, 
주님과의 남모르는 교제가 깊어지지 않았던들 결코 가능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요한이 쓴 요한복음을 통해 공관복음의 미스터리를 이해할 수 있고, 
요한서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랑 그 자체이심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역사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요한의 철저한 '도구 됨'이 이처럼 엄청난 열매를 수반한 것이다.

만약 그대가 주님께서 그대에게 명령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주님의 도구되기를 단념치 않는다면,
그대는 상상치도 못한 열매를 거두는 '진리의 사람'이 될 것이다.(p.57-59)


하나님과 경찰관의 다른 점



죄는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깨는 것이다.
죄를 지을 때 우리는
돌로 제본된 법전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사랑을 깬다.

그래서 죄의 해결책은
더 나은 교육이나 더 나은 의지력이 아니라,
관계에 화해와 회복을 이루는 더 나은 길
즉 십자가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냥 빠져나가게 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저 우리의 손이나 한번 치고 마시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때로 우리의 손을 잡아 불에 대신다.
단 그분이 우리 손을 함께 붙잡고 계신다.(p.234-245)


"관계의 영성"(레너드 스윗) 중에서


Coram Deo

To worship is...
  • to quicken the conscience by the holiness of God,
  • to feed the mind with the truth of God,
  • to purge the imagination by the beauty of God,
  • to open the heart to the love of God,
  • to devote the will to the purpose of God"*
 *William Temple, The Hope of a New World, p. 30; cited by James Montgomery Boice inWhatever Happened to the Gospel of Grace? (Wheaton, IL: Crossway, 2001), p. 175.

관계성

인간 사이의 관계는 참으로 규정을 불허하는 면이 있다.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이건 진짜, 이루 말할수 없이 슬픈 경우다)
아주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졌던 만남이, 나의 영원을 판가름내기도 한다. 
범상하기 그지없었던 누군가가, 어떤 소중한 계기를 통해 내 생명의 은인이 되기도 하고 
조용히 구석을 지키던 은은한 한 존재가, 실은 그 공동체의 엄청나게 강력한 구심점이었음을 그가 떠난 후에야 뒤늦게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살다보면 가끔은,
예전에 나에게 항상 일방적인 돌봄의 대상이었던 어린 누군가가
매일매일 조금씩 알아채지 못했던 사이 어느덧 훌쩍 자라있어
인생이 몹시도 버겁게 느껴지는 어떤 날, 고맙게도 내게 어깨를 빌려주는 
매우 뿌듯한 반전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또, 피 선생이 말씀하셨듯 인생의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실히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기도 하고, 
일생을 그리워하면서도 평생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그건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지독히 슬프고 잔인하기까지 한 시나리오겠지만.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는 
그와 영원을 공유하리라는 행복하고 확실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어쩌다 이 세상에서는 서로 떨어져 있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게 감정적으로는 슬프기 그지없다 하더라도.

오늘을 충분히 웃으며 살수 있고 
금이라는 순간을 에누리없이 향유할수 있으며, 
오히려 그런 계기를 통해 
마음의 장막을 더 넓게 펴고, 장막의 버팀목을 더 깊게 뿌리박는 동안 
그렇게 각자가 하나님과 보다 깊은 사랑에 빠짐으로써 서로와도 좀더 가까워지리라는, 
그래서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앞으로 그와 더욱 밀도있게 마음을 나눌수 있겠다는,
아름다운 소망이 마음을 꽉 채우게 된다. 

그리움과 아쉬움의 볼모가 되지 않은 채
어제보다 오늘, 그를 더 많이 사랑할수 있다는 것은,
그를 향한 사랑을 한치도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둘러싼 현재와 여기라는 시공간에 지극히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멋진 일이다. 

하나님은 정말 멋있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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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알고 보면 사실 문맥에 전혀 맞지 않지만, 암튼 "문자적 의미"가 오늘따라 무척 맘에 드는 구절.  
[Philemon 1:15] Perhaps the reason he was separated 
from you for a little while was that you might 
have him back forever
 

아름다움

어디에서 들은 말이다. 인간에게 있어 왜 예술이 중요한지 아냐고. 그건 인간은 뭔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행복할수 없고, 인간의 본성상 인간은 뭔가 '아름다운' 대상이 아니면 그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인데, 예술은 늘 아름다움을 다루기 때문이란다. 듣는 순간 너무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걸그룹의 미끈한 종아리든, 모짜르트 레퀴엠의 눈물나는 키리에든, 어떤 이의 보드랍고 따뜻한 마음씨든, 그 아름다움이 어떤 형태건 어떤 수준이건. 인간의 마음이란 뭔가 미적인 자극을 받아야 거기에 끌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맞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은 소설가라서, 소설의 위대함을 말하고 싶었던 의도로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의 그 어떤 예술이 십자가에 감히 비길 수 있을까. 가장 비참하고 잔혹한 그곳에 기꺼이 가셨던 예수님의 마음, 또 그 아픔을 다 끌어 안으신 하나님의 마음. 힘이 있고 권리가 있고 자격이 있었지만, 그것을 다 내려놓으시기로 결단한 그분의 꿋꿋하고 온유한 모습. 그 내려놓음의 결과, 온 세상 구석구석에 퍼져나간 그분을 닮은 아름다운 마음들. 그 마음들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나를 구체적으로 만나주셨고, 그분의 향기로 나를 매료시키셨다.  

주님이 너무 아름다운 분이기에, 나는 정말 행복하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Psalm 27:4]
One thing have I desired of the LORD, that will I seek after;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to behold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enquire in his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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